Fake IDOL :: [한국예술]민속극 가면극 강령탈춤 방학숙제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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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숙제 뽀개기 ~

학교에서 낸 방학숙제 여기서 뽀개요~

이번 포스팅은 강령탈춤이에요~

 

 

정의

 

황해도 강령康翎 지역에서 유래된 가면극.

 

역사

 

강령 탈춤은 황해도 강령 지역에서 연희되다가 6•25전쟁 때 남하한 실향민들에 의해 인천 및 서울에서 재현되었다. 따라서 현재의 강령 탈춤은 본래 전승지인 황해도 강령을 떠나 남한 일대에서 폭넓게 전승되고 있다. 강령 탈춤의 역사적 전개에 대해서는 문헌 기록이나 증빙 자료가 거의 전해지지 않아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강령 탈춤은 산대도감계통극山臺都監系統劇의 한 형태로, 인근 지역의 해주와 연관을 맺고 발전해 왔다고 논의된다. 강령은 해주에서 남서쪽으로 약 80리가량 떨어져 있는, 300호 내외의 가구가 모여 사는 읍이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해산된 해주 감영監營 소속의 교방인들이 강령으로 모여들었던 것이라든지, 강령 출신의 관기官妓로서 옥관자玉貫子까지 하사받은 김금옥이 은퇴 후 자신의 고향 강령으로 돌아갔던 것 등이 강령 탈춤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고 전한다. 또한 통인청通人廳을 중심으로 집결되었던 연희자 일부도 강령에 집결하여 탈춤에 참여하여 전성기를 이루는 데에 기여하였다고 한다. 한편, 강령 인근의 강천리康泉里에는 재인촌才人村이 있었는데, 이곳에 거주하였던 재인들 또한 강령 탈춤 전승과 활성화에 공헌하였다.

여타 탈놀이들과 마찬가지로 강령 탈춤도 원래는 구전口傳으로 전승되었지만, 20세기 중반에 들어서면서 대사가 기록되어 탈꾼들은 활자화된 대본을 외워 연희하게 되었다. 강령 탈춤은 애초에 시대적 사회성을 기반으로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마당극이었지만, 기록된 대사를 반복적으로 외워 연희함으로써 정형화된 연희로 변모되었다. 이러한 과정과 더불어 강령 탈춤 대사는 여러 채록자 및 정리자들에 의해 여러 개의 이본異本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최초의 대본은 1943년에 채록되어 1957년과 1972년에 발표된 임석재 채록본이다. 탈춤 현장에서 채록된 것은 아니지만, 실제 강령 탈춤 지도자 송규흠을 비롯하여 연희자 최승원•최준봉을 대상으로 채록한 것이다. 한편, 임석재 채록본은 당시 양정중학교에 재학하면서 교사인 임석재에게 강령 탈춤의 존재를 제보하였던 김응규의 노고가 있었다. 강령 탈춤의 두 번째 대본은 1955년 김일출에 의해 채록되어 1958년에 발표된 것이다. 본 채록본은 북한에서 발간된 『조선민속탈놀이 연구』라는 단행본 속에 8쪽 분량으로 수록되었다. 이것이 뒤늦게 남북 문화 및 학문 교류 사업의 일환으로 남한에 알려지면서 1998년에 영인본이 출간되었다. 본문에 따른 주석 번호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주석 말미에 보면 1955년 5월에 현지 조사를 통해 함계휘•최승원, 그리고 다른 두 명이 구술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나오는 함계휘나 최승원은 강령 탈춤 연희자로 알려진 인물들이다. 특히 최승원은 임석재가 채록할 당시 주요 구술자였으며, 함계휘는 김응규와 함께 활동하였던 사람으로 확인되었다. 강령 탈춤의 세 번째 대본은 1967년과 1983년에 발간된 최상수 채록본이다. 최상수본 강령 탈춤 대사는 해서 지역의 다른 가면극 대본들과 함께 『해서가면극의 연구』에 수록되었다. 정확한 조사 장소•일시•제보자 등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강령 현지에서 채록된 것으로 보인다.

1969년에 정리된 이두현•김기수 채록 및 정리본은 강령 탈춤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에서 발간한 중요무형문화재 조사 보고서이다. 이는 현장에서 채록된 것이 아니라 월남한 주요 대상자들을 미리 선정한 후, 임석재 채록본을 토대로 하여 제보자들의 구술을 기록 및 정리한 것이다. 1979년에는 이재인 정리본이 발간되었다. 이것은 이두현•김기수가 작성한 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에 실린 대본을 중심으로 정리된 것인데, 그 목적은 체계적인 전수 교육을 위한 것이다. 1982년에는 양종승 정리본이 문화재보호협회에서 발간한 『탈춤대사집』에 수록되었다. 이 대본은 당시 강령 탈춤 보존회에서 사용하고 있었던 대본을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다. 1986년에는 김영석 정리본이 발간되었는데, 이 역시 기존에 발간된 대본들을 토대로 하여 한층 상세하게 정리한 것이다. 1989년에는 김정순•김실자 정리본이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의 지원을 받아 출간되었다. 이 대본은 강령 탈춤 보존회에서 공식적으로 전수용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서, 앞서 발간된 정리본들과 같이 기존의 대본들을 토대로 정리되었다. 2002년에는 정형호 정리본이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펼치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기록 보존 사업의 일환으로 간행되었다. 여기에 수록된 대사는 기존의 채록본들과 정리본들, 그리고 현재 강령 탈춤 보존회에서 사용 중인 김정순•김실자 대본 등을 토대로 하면서 강령 탈춤 보존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희자들의 구술을 대상으로 정리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2004년에 새로운 채록본 및 정리본이 김응규•양종승에 의해 발간되었다. 이는 1981년과 1982년에 걸쳐 강령 출신 이겸하•김응규•송순희 등의 구술에 의해 채록되었던 것이다.

 

내용

 

강령 탈춤은 정초•대보름•초파일•단오•추석 등의 명절에 연행되었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마을 주민들이 공동 연합을 위해 대동적 행사를 할 때 놀기도 하였다. 강령 탈춤은 크게 앞놀이, 탈놀이, 뒷놀이 등 3단계 놀이로 구분된다. 앞놀이는 길놀이와 서막고사로 꾸며진다. 탈놀이는 총 일곱 개 과장으로 구성되는데 제1과장 사자춤(원숭이춤 및 마부춤 포함), 제2과장 말뚝이춤, 제3과장 먹중춤, 제4과장 상좌춤, 제5과장 양반말뚝이춤, 제6과장 노승•취발이춤(제1경 팔먹중춤, 제2경 노승춤, 제3경 취발춤), 제7과장 미얄영감•미얄할미춤(제1경 미얄영감춤, 제2경 미얄할미춤, 제3경 무당춤)으로 되어 있다. 뒷놀이는 탈 태우기 및 뒤풀이로 구성된다. 강령 탈춤의 전체적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앞놀이: ①길놀이, ②서막고사
  2. 탈놀이: ①1과장 사자춤(원숭이춤 및 마부춤 포함), ②제2과장 말뚝이춤, ③제3과장 먹중춤, ④제4과장 상좌춤, ⑤제5과장 양반•말뚝이춤, ⑥제6과장 노승•취발이춤(㉠제1경 팔먹중춤, ㉡제2경 노승춤, ㉢ 제3경 취발춤), ⑦제7과장 미얄영감•미얄할미춤(㉠제1경 미얄영감춤, ㉡제2경 미얄할미춤, ㉢제3경 무당춤)
  3. 뒷놀이: ①탈 태우기, ②뒤풀이

강령 탈춤의 길놀이는 출연자 모두가 줄지어 풍악을 울리면서 마을을 돈다. 맨 앞에 깃발을 앞세우고 그다음으로 꽹과리, 징, 장구, 북, 새납(태평소) 등의 악사들이 이어진다. 이어서 말뚝이 두 명, 사자 두 마리, 마부 두 명, 원숭이, 상좌 두 명, 먹중 두 명, 취발이, 노승, 진한양반(맏양반), 마한양반(둘째 양반), 변한양반(재물대감), 도령, 미얄영감, 미얄할멈, 용산삼개집, 남강노인, 문사장, 무당의 순으로 탈꾼들이 악사 뒤를 따른다. 소무는 말 또는 가마를 타기도 하고 남강노인은 검정소를 타기도 한다. 길놀이는 마을을 한 바퀴 돌아 탈판으로 행하는데, 그 목적은 탈놀이의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나쁜 액이나 해로운 기운을 제거하여 마을을 정화하기 위함이다. 길놀이를 마치고 나면 탈판 중앙에서 서막고사를 지낸다.

강령 탈춤 탈놀이는 제1과장 사자춤부터 시작하는데, 여기에는 원숭이춤과 마부춤이 포함된다. 사자는 흰 바지저고리에 털이 달린 사자바지를 입는다. 마부는 흰 바지저고리에 검정색 더그레를 입고 허리에 홍색 띠를 뒤로 두르고 양다리에 좌청•우홍색의 긴 댓님을 허벅지와 허리띠로 연결하여 묶는다. 가면을 쓰고 꽃패랭이를 쓴다. 원숭이는 빨간색 바지와 저고리를 입고 홍색 띠를 허리 뒤로 두른다. 빨간 양말과 장갑을 낀다. 사자춤 음악은 길놀이장단, 늦은타령장단, 자진굿거리장단이다. 사자춤에는 암사자와 수사자 두 마리가 등장하는데, 앞사자꾼은 사자탈을 양손으로 쳐올려 잡고 뒷사자꾼은 오른손을 뒤로 돌려 사자 꼬리를 잡는다. 마부 두 명이 각각의 사자를 몰게 된다. 원숭이가 사자 주위에서 춤을 춘다.

제2과장 말뚝이춤은 두 말뚝이가 똑같은 가면•복색•소도구를 갖추고 왼손에 5∼6척 정도 되는 곤장을 든다. 말뚝이 복색은 흰 바지저고리에 홍색 더그레를 입는다. 허리에 황색 띠를 뒤로 둘러매고 왕방울을 찬 후 채찍을 꽂는다. 양다리에 좌청•우홍색의 긴 댓님을 허벅지와 허리띠로 연결하여 묶고, 가면과 꽃패랭이를 쓴다. 두 말뚝이가 각각 탈판 양쪽에서 달음질치듯 껑충껑충 중앙으로 뛰쳐나와 서로 마주 보고는 깜짝 놀란다. 이와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나서는, 서로 마주 보고 염불장단•타령장단•자진굿거리장단에 맞춰 대무對舞한다. 염불장단과 타령장단에서는 곤장을 들고 추다가 마지막 자진굿거리장단에서는 허리 뒤에 꽂아 두었던 채찍을 들고 대무한다.

제3과장 먹중춤은 첫째 먹중과 둘째 먹중이 똑같은 가면과 복색을 갖추고 차례로 등장하여 춤을 춘다. 먹중의 복색은 흰 바지저고리에 칡베장삼을 입는다. 허리에 홍색 띠를 뒤로 둘러매고 양다리에 좌청•우홍색의 긴 댓님을 허벅지와 허리띠로 연결하여 묶는다. 가면을 쓰고 송낙을 쓴다. 첫째 먹중이 등장하여 염불장단•타령장단•자진굿거리장단에 맞춰 장삼춤을 추고 나면, 이어 둘째 먹중이 등장하여 장삼으로 첫째 먹중을 후려쳐 내쫓고 염불장단•늦은타령장단•자진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춤춘 후 퇴장한다.

제4과장 상좌춤에서는 두 명의 상좌가 똑같은 가면과 복색을 갖추고 양쪽 귀퉁이에서 등장하여 대무한다. 상좌춤의 복색은 흰 바지저고리에 행전을 차고 백장삼을 입으며 흰 고깔을 쓴다. 홍가사를 어깨에 두르고 염주를 목에 건다. 염불장단•늦은타령장단•굿거리장단에 맞춰 춤춘다.

제5과장 양반•말뚝이춤은 양반 가문의 못난 양반 넷이 두 명의 말뚝이들에게 끌려 나와 대사와 노래를 하고 대무를 춘다. 진한양반은 흰 바지저고리에 행전을 차고 회색 칡베 장삼을 입는다. 허리에 옥색 술띠를 묶고 지팡이를 짚으며 화선을 들고 머리에 가면을 쓴 후 개가죽 관을 쓴다. 마한양반의 복색은 진한양반의 차림새와 같으며, 백색 부채와 지팡이를 짚고 가면을 쓴 후 총관을 쓴다. 변한양반은 흰 바지저고리에 행전을 차고 옥색 도포와 쾌자를 입는다. 허리에 옥색 술띠를 매며 화선을 들고 가면을 쓴 후 홍관을 쓴다. 도령은 흰 바지저고리에 남색 쾌자를 입고 술띠를 맨다. 백선을 들고 가면을 쓴 후 복건을 쓴다. 두 말뚝이는 말뚝이춤 과장의 차림새와 같고 채찍을 든다. 양반•말뚝이춤 과장은 주로 자진굿거리장단을 사용하고, 변한양반이 등장해서는 장타령장단•만세바지장단•굿장단 등을 사용한다. 양반•말뚝이춤은 장삼춤, 부채춤, 지팡이춤, 병신춤, 무당춤, 한삼춤, 채찍춤 등으로 이루어진다.

제6과장 노승•취발이춤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술 취한 취발이가 그를 따르는 일곱 명의 먹중들과 함께 팔먹중춤의 군무를 추는 것이고, 두 번째는 두 명의 상좌를 대동한 노승이 아리따운 소무를 보고 동하여 불법을 파계하는 춤이며, 세 번째는 취발이가 노승한테서 빼앗은 소무를 데리고 흥겹게 즐기다가 소무가 낳은 취발이 아이를 데리고 글공부를 가르치는 춤으로 되어 있다. 먹중들은 흰 바지저고리에 더그레를 입고 허리에 홍색 띠를 뒤로 둘러맨다. 양다리에 좌청•우홍색의 긴 댓님을 허벅지와 허리띠로 연결하여 묶는다. 취발이는 흰 바지저고리에 일월日月을 상징하는 둥근 모양의 점박이가 박힌 붉은 더그레를 입고 허리에 황색의 띠를 뒤로 둘러매고 왕방울을 찬다. 양다리에 좌청•우홍의 긴 댓님을 허벅지와 허리띠로 연결하여 묶고, 양손에는 푸른 느티나무 또는 버드나무 한 묶음을 든다. 소무는 홍치마, 노랑 저고리에 남색 쾌자를 입고 제비 홍띠를 허리 뒤로 둘러맨다. 색동 한삼을 손목에 끼고 가면을 쓴 후 머리에 벙거지를 쓴다. 상좌는 흰 바지저고리에 행전을 차며 백장삼을 입고 흰 고깔을 쓴다. 홍가사를 어깨에 두르며 염주를 목에 건다. 노승은 회색 바지저고리에 행전을 차며 회색 칡베 장삼을 입고 붉은 가사를 어깨에 멘다. 백팔 염주를 목에 걸고 화선과 육환장을 들며 가면을 쓴 후 송낙을 쓴다. 노승•취발이춤은 염불장단•타령장단•자진굿거리장단에 맞춰 춘다.

제7과장 미얄영감•미얄할미춤 역시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미얄영감춤, 두 번째는 미얄할미춤을 춘다. 여기서는 미얄영감, 미얄할미, 용산삼개집의 삼각관계에서 애정과 갈등을 소재로 한 서민 생활의 애환 및 일부처첩一夫妻妾의 생활상을 다룬다. 또한 마을과 마을 주민의 번영과 번성을 위한 상징적 행위로서 성행위를 표현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얄영감이 난리 통에 미얄할미를 잃고 돌아다니다가 주막에서 젊은 여자를 만나 첩으로 삼는다. 할미는 고생 끝에 영감과 상면하지만 영감을 사이에 둔 할미와 용산삼개집 간의 갈등이 고조되어 할미가 쫓겨나고 만다. 세 번째 춤은 영감과 첩한테서 내쫓긴 할미가 죽게 되자, 마을의 원로 격인 남강노인이 등장하여 무당을 불러 미얄할미를 좋은 곳으로 보내기 위한 지노귀굿을 거행한다.

탈놀이가 끝난 후, 사용하였던 모든 탈은 모닥불에 태운다. 그리고 뒤풀이가 이어진다. 뒤풀이에서는 탈꾼, 악사, 관객 모두가 함께 어울려 음주를 하면서 밤새껏 신명풀이를 하고 논다. 뒤풀이는 탈판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는 마지막 끝장이다.

 

특징 및 의의

 

강령 탈춤은 황해도 전 지역에서 전승되어 온 여러 탈춤과 가면 형태, 춤 형식, 연기 방법, 과장별 순서 등을 비교•분석하여 볼 때, 독특한 차별성이 있다. 강령 탈춤은 서민들의 애환과 생활상, 일부처첩의 삼각관계로 인한 비극적 갈등과 삶, 그리고 마을과 마을민의 번영과 번성을 위한 생산력 갈구에 대한 상징적 행위, 양반 및 파계승들에 대한 서민들의 조롱과 모욕, 액막이의 벽사의식 등을 표출하고 표현하며 또한 폭로한다. 종이로 제작된 20여 종의 탈은 극의 종결과 함께 불태움으로써, 마을과 마을 주민들에게 혹여라도 남아 있을 수도 있는 나쁜 액을 제거하고 평온하고 평안한 희망에 찬 미래를 도모한다.

 

참고문헌

 

강령 탈춤 연구(양종승, 한국민속학17, 한국민속학회, 1984), 강령 탈춤을 통해 본 가면극의 무용적 요소(양종승, 고전희곡연구5, 한국고전희곡학회, 2002), 국립문화재연구소 중요무형문화재 기록도서­강령 탈춤(정형호, 화산문화, 2002),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강령 탈춤(이두현•김기수,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69), 한국 가면극 그 역사와 원리(전경욱, 열화당, 1998), 해서 가면극의 연구(최상수, 정동출판사, 1983), 황해도 탈놀이(서연호, 열화당, 1988).

Posted by Users FAKE ID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