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ke IDOL :: [한국예술]민속극 가무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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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9 20:16

[한국예술]민속극 가무백희 Folk art2018.08.09 20:16

한국민속예술인 가무백희에 대해 포스팅 합니다.

 

 

정의:

 

신라시대 이래 각종 행사에서 연행되었던 노래, 춤, 기예 등 각종 연희의 총칭.

 

역사: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 유리왕儒理王 9년(기원후 32)조에 가무백희歌舞百戲라는 용어가 처음 나타난다. 그리고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107 산악散樂조에는 551년(진흥왕 12)에 처음 설치한 팔관회八關會에서 가무백희를 연행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① 왕은 이미 육부六部를 정한 후에 이를 두 편으로 갈라, 왕녀王女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部內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여 편당을 만들었다. 7월 16일부터 날마다 일찍 대부大部의 뜰에 모여서 길쌈을 하여 밤 열 시쯤 일을 마쳤다.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功의 다소를 살펴, 진 편은 음식을 마련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하게 했다. 이때 모두 가무백희를 했는데, 이를 가배嘉俳, 가위라 했다.王旣定六部 中分爲二 使王女二人 各率部內女子 分朋造黨. 自秋七月旣望 每日早集大部之庭 績麻 乙夜而罷. 至八月十五日 考其功之多少 負者置酒食 以謝勝者. 於是 歌舞百戲皆作 謂之嘉俳

② 진흥왕 때 팔관회를 열었다. 매년 11월에 대궐 뜰에다 스님들을 모으고, 윤등輪燈 하나를 설치하고 사방에 향등香燈을 늘여 세웠으며, 또 두 개의 채붕綵棚을 설치하여 백희가무百戲歌舞를 바치며 복을 빌었다.眞興王時設八關會. 其法每歲仲冬會僧徒於闕廷 置輪燈一座列香燈四旁. 又結兩綵棚呈百戲歌舞以祈福.

①에서 가무백희는 음력 7월 15일부터 한 달 동안 부내部內의 여자들이 모여서 길쌈 시합을 한 후, 8월 15일에 어느 편이 베를 더 많이 생산했는지 시합하는 대회인 가배嘉俳 행사에 등장한다. 이 대회에서 진 팀은 이긴 팀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했고, 이때 가무백희가 연행되었다. 이 가배 행사는 오늘날의 8월 한가위로 계승되었다. ②는 진흥왕 때 설행한 팔관회의 연행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삼국사기』 권4 572년(진흥왕 33) 10월 20일조에는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병사들을 위해 7일간 팔관회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다.冬十月二十日 爲戰死士卒 設八關筵會於外寺七日罷 이는 팔관회가 전사자戰死者의 위령제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고려 개국 후 최초의 팔관회는 918년(태조 원년) 11월에 철원에서 개최되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③ 태조 원년 11월 유사有司가 태조에게 말하기를, “이전의 임금(궁예)은 해마다 11월에 팔관회를 열고 복을 기원했습니다. (전하께서도) 그 제도를 따르소서.” 하니 왕은 그 건의를 받아들였다. 마침내 구정毬庭, 격구장에 바퀴 모양의 등[輪燈]을 설치하고 (구정의) 네 모서리에는 향등을 일렬로 배열했다. 또한 두 개의 채붕을 만들어 세웠는데, 각각 그 높이가 5장丈이 넘었다. 그 앞에서 백희가무를 공연했다. (그 행사의) 사선악부四仙樂部, 용봉상마거선龍鳳象馬車船은 모두 신라의 고사였다. 관리들은 모두 도포를 입고 홀을 든 채 그 의례에 참석했다. 구경꾼들이 도성을 기울일 만했다. 왕이 위봉루威鳳樓로 가서 그 의례를 참관했다. (팔관회는) 연례행사가 되었다.太祖 元年十一月 有司言 前主 每歲仲冬 大設八關會以祈福 乞遵其制 王從之. 遂於毬庭置輪燈一座 列香燈於四旁. 又結二綵棚 各高五丈餘 呈百戲歌舞於前. 其四仙樂部 龍鳳象馬車船 皆新羅故事. 百官袍笏行禮 觀者傾都. 王御威鳳樓觀之. 歲以爲常.

③은 『고려사高麗史』 권69 지23, 예11 가례잡의家禮雜儀 중동팔관회의仲冬八關會儀조의 기록이다. 태봉의 팔관회는 11월에 거행되었고, 고려의 팔관회는 신라와 태봉泰封의 팔관회로부터 일정한 영향을 받았으며, 팔관회의 공연 내용은 백희가무, 사선악부, 용봉상마거선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때의 팔관회 모습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권1 태조 원년 11월의 기록에서도 찾을 수 있다. 다만 여기에는 “태조가 위봉루威鳳樓로 나가서 관람한 그것을 부처를 공양하고 신을 즐겁게 하는 모임供佛樂神之會이라 했다.”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이 두 기록을 종합해 보면 고려시대의 팔관회에서는 위봉루 앞 구정에 대규모의 연등을 설치하여 밤새도록 등불을 밝히고, 두 개의 채붕을 설치해 그 앞에서 가무백희를 벌였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가무백희는 산악백희散樂百戲에 해당하는 연희를 지칭하는 것이다. 고려 태조는 943년(태조 26) 4월에 훈요십조訓要十條를 내렸는데, 이 중 6조는 팔관회와 관련된 내용이다. 이러한 태조의 유지有志에 따라 팔관회는 고려가 멸망하기 직전인 1391년(공양왕 3)까지 지속되었다. 그렇지만 도중에 중단되거나 변화를 겪기도 했다. 가장 오랫동안 중단된 기간은 987년(성종 6) 10월에서 1010년(현종 원년) 11월까지의 24년간이었다. 성종은 981년(성종 원년) 11월, 팔관회의 잡기雜技들을 불경不經하고 요란하다는 이유로 금지했다. 987년(성종 6) 6월, 최승로崔承老는 시무時務 28조에서 팔관회의 폐단을 지적하며 폐지하기를 요청했다. 고려의 팔관회는 금욕적이고 종교적이기를 요구하는 팔계율八戒律과는 달리 화려하고 풍류적이며 향락적이어서, 경건한 정통 불교와는 달리 채붕을 설치하고 불교 교리에서는 금지되었던 백희가무를 즐겼다. 즉, 고려의 팔관회는 점차 토착 신앙적 성격을 띠면서 음주가무까지 포함하는 성대한 축제로 변모했던 것이다. 이러한 팔관회의 유희적 성격은 이때 행해진 가무백희의 내용과 특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내용:

 

신라시대 팔관회에서처럼 두 개의 채붕을 설치하고 그 앞에서 가무백희를 연행하는 전통은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지속되었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고려 조정의 악樂을 담당하는 기관에 속한 사람들로 천여 명을 헤아린 후, 덧붙여 “자지柘枝(연화대무), 포구抛毬(포구락무) 등의 기예도 있고 백희를 연행하는 자가 수백 명인데, 들으니 모두 민첩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한다亦有柘枝•抛毬之藝, 其百戲數百人 聞皆敏捷特甚.”라고 하여, 고려시대 가무백희가 매우 세련되고 번성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산대색山臺色이라는 산대를 관리하던 관청을 두었다가 1279년(충렬왕 5) 연등도감燃燈都監에 병합하였고, 조선시대에는 나례도감儺禮都監이 설치되어 나례와 더불어 조정의 의식, 중국 사신 영접 행사 등에 쓰이는 가무백희 공연을 담당했다.

고려시대 가무백희의 모습을 보여 주는 자료에는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구나행驅儺行〉을 들 수 있다. 〈구나행〉은 나례에서 연행된 연희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 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1구∼14구)는 12지신과 진자侲子들이 역귀를 쫓는 의식을 묘사하는 내용이고, 후반부(15구∼28구)는 구나 의식이 끝난 후 연희자들이 각종 잡희를 연행하는 내용이다. 후반부를 살펴보자.

 

오방귀 춤추고 사자가 뛰놀며
불을 뿜어 내기도 하고 칼을 삼키기도 하네.
서방에서 온 저 호인胡人들은
검기도 하고 누렇기도 한 얼굴에 눈은 파란색이네.
그 중의 노인이 등은 구부정하면서도 키가 큰데
여러 사람들 모두 남극성이 아닐까 놀라고 감탄하네.
강남의 장사꾼은 무어라 지껄이며
나아갔다 물러났다 가볍고 빠르기 바람결의 반딧불 같네.
신라의 처용은 칠보 장식을 했는데
머리 위의 꽃가지에선 향기가 넘치네.
긴 소매 날리며 태평무를 추는데
불그레하게 취한 얼굴은 아직도 다 깨지 않은 듯.
누런 개는 방아 찧고 용은 여의주를 다투며
온갖 짐승 더풀더풀 춤추니 요임금 시절 궁정 같네.


舞五方鬼踊白澤 吐出回祿呑靑萍
金天之精有古月 或黑或黃目靑熒
其中老者傴而長 衆共驚嗟南極星
江南賈客語侏離 進退輕捷風中螢
新羅處容帶七寶 花枝壓頭香露零
低回長袖舞太平 醉臉爛赤猶未醒
黃犬踏碓龍爭珠 蹌蹌百獸如堯庭

 

인용문은 <구나행> 중 나례에서 구역驅疫이 끝난 뒤에 행해진 연희들을 보고 읊은 것이다. 여기에서는 오방귀무五方鬼舞, 사자무, 불 토해내기, 칼 삼키기, 서역의 호인희胡人戲, 줄타기, 처용무, 각종 동물로 분장한 가면희 등을 묘사했는데, 이는 대부분 가무백희, 산대잡극, 산악백희, 산대희, 잡희 등으로 부르던 연희들이다.

이 외에도 가무백희의 내용은 이색의 〈산대잡극山臺雜劇〉(헌선도, 처용무, 솟대타기, 폭죽놀이), 성현成俔의 〈관나희觀儺戲〉(방울받기, 줄타기, 인형극, 솟대타기)와 〈관괴뢰잡희觀傀儡雜戲〉(땅재주 또는 솟대타기, 줄타기, 방울받기, 인형극), 동월董越의 『조선부朝鮮賦』(만연어룡지희, 무동, 땅재주, 솟대타기, 각종 동물 춤), 아극돈阿克敦의 『봉사도奉使圖』(산대잡상놀이, 줄타기, 접시돌리기, 땅재주, 탈춤), 송만재宋晩載의〈관우희觀優戲〉(영산회상, 가곡, 12가사, 어룡만연지희, 불 토해내기, 포구락, 사자무, 처용무, 유자희, 요요기, 판소리 단가, 판소리, 땅재주, 검무, 줄타기, 솟대타기, 홍패고사) 등의 문헌과 그림을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또한 현재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가면극과 죽방울돌리기, 솟대타기, 풍물, 남사당패의 대접돌리기(버나), 땅재주(살판), 줄타기(어름), 탈놀이(덧뵈기), 꼭두각시놀음(덜미) 등과 같은 종목에서 오랜 전통을 지닌 가무백희의 잔존양상을 볼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무용, 음악, 연극, 체육, 무술이 세분화되지 않은 채 연행되던 고대의 총체적인 연행 예술을 산악백희라 부른다. 삼국시대 동아시아 공동의 문어文語인 한문과 공동의 종교인 불교가 유입됐을 때, 동아시아 공동의 연희 문화인 산악백희도 한반도에 전래한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이후 조선 전기까지의 중세 보편주의 시대는 한•중•일 각국이 함께 동아시아의 공동 문화를 완성해 간 시기였는데, 연희 문화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러 기록을 통해 이미 4세기 이전부터 서역악의 영향을 받아 고구려에서 잡희가 성행했고, 그것이 신라 통일 이후 백제의 잡희와 함께 신라 향악鄕樂에 오기五伎 등으로 집대성되었으며, 고려시대에 와서 연등회팔관회에서 연행된 것을 볼 때 가무백희의 전통이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에서 산악백희라고 부르던 연희들을 백희, 가무백희, 잡희, 산대잡극, 산대희, 나희, 나 등으로 불렀다. 이는 유사한 대상을 다양한 용어로 부른 것이다. 따라서 신라시대의 행사(팔관회•연등회•가배 등), 고려시대의 행사(우란분재나례수희•과거 급제자 축하 행사•환영 행사 등), 조선시대의 행사(나례•중국 사신 영접 행사•문희연•수륙재•우란분재•관아 행사•읍치제의•동제•사대부가의 잔치•왕의 각종 행차, 궁중의 내농작•지방관 환영 등)에서 연행된 대부분의 연희들은 가무백희라고 총칭할 수 있는 종목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무백희 계통의 연희가 변화 발전을 거듭하여 조선 후기에 수준 높은 본산대놀이 가면극, 판소리, 꼭두각시놀이 등의 전통연극을 성립시켰고, 현재도 남사당패나 서커스단에서 공연 종목으로 전승되고 있다.

 

참고문헌:

공연문화의 전통(사진실, 태학사, 2002), 한국고전희곡의 역사(박진태, 민속원, 2001), 한국 민족 공연학(김익두, 지식산업사, 2013), 한국연극사(이두현, 학연사, 2009), 한국의 전통연희(전경욱, 학고재, 2004).

http://folkency.nfm.go.kr/kr/topic/%EA%B0%80%EB%AC%B4%EB%B0%B1%ED%9D%AC/1230

 

 

Posted by Users FAKE IDOL